30살 전문대 중퇴자 학벌 주의 사회 속의 아이러니... [25]
난 올 해 나이 30살의 사업가이다.
가끔씩 아고라를 보면... 많은 고민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학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나는 전문대를 중퇴했고, 한 동안 컴플렉스에 빠져 있었지만, 지금은 사업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굳이 규정을 한다면, 죽고 나서가 아닐까?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해서 계속 돌고 있는 것이 삶이라면, 내가 패배자라고 생각 한 순간은 띠의 바깥쪽 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단지... 띠의 안쪽면인 것 처럼...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각자 자기 기준에서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틀즈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어크로스더 유니버스"를 보면, 주인공 친구 아버지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원하는 직업을 강요하다가 주인공에게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묻자 주인공은 이렇게 대답한다. "제 생각에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는...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 인 것 같습니다."
난 2000년도에 입학한 전문대학교를 군제대인 2003년 이후 다시 복학하지 않아서 저절로 중퇴자가 되었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은 전문대 졸업장도 따내지 못한걸 인생 낙오 또는 패배자로 인식하셨지만, 사실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은 거기를 졸업하나, 또는 편입해서 지방 4년제엘 들어가나 별 차이는 없는 듯 했다.
사실 처음에는 복학을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였다. 전역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남의 가게일을 도와주러 나가고 계셨고, 의약 판매 회사에서 이사직을 맡고 계셨던 아버지는 IMF의 잔해가 채 가시기 전에 의약 분업으로, 파산 직전에 이르러 차까지 팔아 이자를 메꾼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이것 저것 교재비 재료비가 제일 많이 들어간다는 산업 디자인과에 복학해서 후배한테 술 한잔 못 사주면서 찌질하게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군입대 전에 잠깐 다음 카페 활동을 통해 단편영화 제작을 했었는데, 뭐 하나 이뤄 놓은 것 없이 끌려가다 시피 입대 했으면서, 난 이미 영화인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시나리오를 쓰곤 했다. 한가지 더, 사업을 하고 싶었다. 무엇을 만드는 회사가 될지는 몰라도, 막연하게 내 회사를 갖는 꿈을 갖고, 군 도서관에서 월트 디즈니, 맥도날드, 코카콜라, 메킨토시, 애플 그리고, 실리콘 벨리의 창업 신화들을 읽으며 흥미를 키워 왔다.
군 제대를 앞두고, 누구라도 그렇듯이 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스물 셋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사판에서의 일당 5만원의 막노동과 식당 서빙 같은 단순 알바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영화인 아니면, 사업가라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막연한 꿈 때문에, 월수금에 공사판에서 일을 하고 화목에 사업을 구상하거나 또는 낮에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사업을 추진하곤 했다. 2005년도 집안은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어, 내가 조금만 정신차리고 돈이 되는 일을 하면 최소한 어머니가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하지는 않을 수는 있었을텐데, 철부지 영화인이자 사업가는 결국 집안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빚만 떠안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남들처럼 차곡 차곡 자본금을 모아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계획도 준비성도 없이 자신감에만 충만 해 있던 나는,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한대와 핸드폰 한대만 있으면 어떻게든 무엇인가는 시작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 했다. 영화인의 꿈을 키우고자 군제대 후 바로 시작 한 일은 연예 기획사에서의 일이었다. 면접을 본 젊은 여팀장은 꼬질꼬질 손으로 쓴 이력서와 지하철역에서 찍어서 주변에 칼이나 가위를 찾지 못해 대충 손으로 찍은 증명 사진을 보더니... 다음날부터 출근 하라고 했다. 두가지 결론은 매니지먼트사에서의 일은 영화인과는 아무런 줄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고, 또 한가지는 그곳은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라, 연기 학원이었다. 나는 명동 거리에서 길 가는 학생에게 "이미지가 좋은데 카메라 테스트 받아보지 않으실래요?"라는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신인 연예인을 발굴하고 있는게 아닌, 학원 삐끼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몰랐고, 연예인이란 그저 커다란 벤에 코디와 매니저를 데리고 다니며 멋진 옷을 입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직 맑은 눈을 한 어린 지망생들은,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며칠 뒤, 부모님을 모시고와, 6개월에 240만원을 결재 하면서도, 본인이 지금 신인 연기자가 아닌 단순히 학원에 등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여전히 개념을 차리지 못한 나는 내가 등록 시킨 고등학생 아이들이 회사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데뷔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고, 모델 에이전시 하는 사람에게, 저녁마다, 카메라 동선과 앵글에대한 질문을 하러 귀찮게 쫓아 다녔다. 그 사람은 아마도 애써 있는 지식을 쥐어 짜며 어깨 넘어로 본 앵글이나 촬영 기법을 알려 주면서 날 정신 나간놈이라고 생각 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실을 알고 상처를 받는데까지의 시간은 4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열정 적인 나를 기대주라고 치켜세워 주었지만, 난 내가 등록시킨 아이들이 학원을 관두고,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대학로에 값싼 연습실을 대관하고, 서울예대 연극과 학생들을 모아 월 6만원짜리 레슨을 3군데에 열었다. 정말 꿈 많은 지망생들이 돈에 부담 갖지 않고 연기를 배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사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몇군데 카페에 올리고 관련 싸이트에 정보를 올리면서 카페를 운영하니 그동안 비싼 수강료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일부는 대전이나 부산에서 올라오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월 6만원이라는 돈은 부모님께 쉽게 얻어 낼 수 있고, 가격 대비 메리트 있는 수업이었지만, 역시 부담이 적으니 책임도 없었다. 불과 3개월도 안되어서 적자가 시작 되었다. 결국 모든 강의를 내리고, 막노동을 해서 모자란 강사료를 메꿔 주었다. 나의 첫번째 사업이었다.
군 전역 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나는 전역 후 불과 6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영화인과 사업가의 꿈 두가지에 대해서 동시에 큰 상처를 떠안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제대 전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내가 비정상이고, 사회에 나가서 뭘 해야 할지 늘 근심에 젖어있었던 동기가 정상이라는걸 깨달았다.
영화인에 대한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꿈은 어느 정도 주춤 한 듯 했지만, 그래도 가진 것 한 푼 없이 사업가에 대한 꿈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교통비도 없어서 나이 스물 넷 먹은 놈이 뼈빠지게 일하는 엄마의 가게에 찾아가, 4000원만... 5000원만 하고 손을 벌리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난 창업전 청년 시절의 잭월치나 웥트 디즈니,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된것처럼 꿈에 부풀어 있었다.
2004년부터 2007년 10월까지 나는 어린이 무용단, 댄스 아카데미, 공연 에이전시, 이벤트 기획 등 소꿉 장난 같은 사업과 직장 생황을 연이어 실패하거나 그만 두었고, 27살 나이에 어머니를 통해 지인으로부터 500만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서 내가 인생의 패배자라는 것을 절실히 실감하기 시작하였다. 난 더이상 아무일도 벌이지 못했고, 더이상은 어머니와 연관 된 빚을 값기 위해 아무런 일도 벌여서는 안되었다. 그저 묵묵히 도둑질만 빼고 돈 되는 일을 찾아야 했고, 월 300은 벌 수 있다는 말에 골프캐디를 지원하러 알아보다가, 사춘 누나의 도움으로 누나가 운영하는 기업 교육 회사에 영업 사원으로 취직하기로 하고 2개월 가량을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
주변의 내 또래 친구들은 토익과 갖가지 자격증을 따느라 분주하거나, 신림동 고시원에서 치열하게 미래를 위해 싸워가고 있는데, 나 혼자 다른 세계에서 이 곳으로 유배 된 것처럼 갑자기 세상이 낮설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이 부러웠고, 아무런 자격증도, 없이 전문대 중퇴자인 학력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와중에 예전에 스무살때 영화를 하면서 알았던 누나가 유방암으로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의녀로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져 곧 누나의 죽음이 인터넷에 퍼지고 네티즌들의 애도가 시작되었다. 난 영안실이 있는 일산 암센터로 가려고 옷을 주워 입다가 조의금 5만원도 마련하지 못하는 가난한 현실과 현재 지칠대로 지쳐 무기력해진 내 모습에 대한 패배감에 그냥 포기해 버리기로 하고는, 사진들을 모아 추모 동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5년간 이런저런 인터넷을 통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배운 기술은 프리미어 동영상 편집과 포토샵 엑셀 파워포인트 등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추모 영상을 만들기 위해 프리미어에 누나의 사진들을 올리고 있는데,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누나를 추모하려 하는건지... 블로거의 공명심에 대한 욕심때문인지... 내 마음을 알 수 없어 괴로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음과 한 유명 연예 기획사에서 여는 신곡의 뮤직비디오 공모전을 보고, 그냥 재미삼아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스텝들을 모으고 새로 시나리오를 쓰고 할 정신도 없었고 그럴만한 정신적, 물질적 여력도 없었다. 그냥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판이나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프리미어에 올리면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시놉시시도 스토리 보드도 시나리오도 없이 첫 음악에 맞춰 첫 장면을 만들기 시작 했다. 캐릭터를 표현 할 기술도 없어서... 주인공은 눈코입도 없이 사람의 형체만 가진 화장실 픽토그램 남녀였다. 무엇보다, 집안에서 아니 방안에서 할 수 있었고, 삶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낼 수 있을 만큼 집중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마치 세상을 져버리고, 방안에서 게임만 하며, 문틈으로 쟁반에 담긴 식사를 건네받는 은둔형 외톨이 같았다. 신기하게도 간단한 추모 영상을 만들 때는 돌아가지도 않던 컴퓨터가 따로 손을 본 것도 아닌데, 1초에 10 ~ 20장을 삽입해야 하는 애니매이션 작업을 하는데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공모전에 영상을 올리고, 어린이 무용단 운영시절에 알던 학부모들에게 댓글을 달아달라고 부탁하고는 한동안 편안히 깊은 잠에 빠졌었다. 잠에서 깨어나 컴퓨터를 켜고 포털싸이트를 여니 메인 화면에 익숙한 그림이 보였다. 내가 올린 애니메이션이 링크가 된 것이다. 클릭을 해서 보니 수천건의 플레이수와 수십개의 감상 댓글이 달려 있었다. 내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들의 일색이었다. 그날 오후에 다른 포털 싸이트에도 영상을 올렸는데, 그 곳에서도 역시 금새 메인 화면에 등록되고, 더욱 더 뜨거운 반응이 일어났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국내 1, 2위의 양쪽 포털 싸이트에서 30만회 이상 플레이가 되고 천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현재의 내 신세에는 당장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그저 인터넷속의 작은 이슈에 불과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기뻐하셨다. 한게임으로 고스톱을 치시는 것 외에는 컴퓨터를 다루지 않았던 어머니인데, 나보다 더 많이 싸이트에 접속해서 댓글들을 리뷰하셨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춘누나의 교육 회사엘 들어갔다. 내가 맡은 임무는 그 회사의 기업 교육 상품을 판매 하는 것이다. 회사 일을 배워 가는 동안 얼마 있어 어머니로부터 내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400개 이상의 참가작이 있었고, 10위권 내의 수상작들을 보면, 대부분 한.중.동 대학의 영화과 출신 동아리이거나, 제작 집단 또는 해외 로케까지 있었는데, 골방에서 세상에 대한 패배감에 휘싸여 은인의 죽음에 조의금 낼 돈도, 추모 영상을 만들 용기도 없는 전문대 중퇴자이자 은둔형 외톨이가 만든 작품이 대상을 탄 것이다. 뜻 밖의 성취에 대한 기쁨과 한편으로는 걱정이 동시에 다가왔다. 겨우 맘을 잡고 새로운 일을 시작 하려는데, 이 공모전의 댓가는 상금과 정식 뮤직 비디오 제작 지원이었다. 회사에서는 미리 내가 대상을 탈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무급 휴직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뮤직 비디오 제작이 내가 이전에 꿈꾸던 영화감독의 꿈에... 적어도 연기학원의 삐끼로 있는 것 보다는 훨씬 인접한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헛물 켜는 짓은 그만 하고 영원한 패배자의 길을 모면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일것 같은 기회도 져버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더이상은 부모님을 실망 시킬 수 없었다. 회사의 배려로... 둘 다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지만, 뮤직비디오가 성공적이라면, 회사의 일은 소홀해질 수 있고, 아무런 성과도 없다는 것 또한 절망감에 회사 일에 소홀해 질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떠밀리다 시피 그 일을 준비 하기로 마음 먹었고, 기획사측에서는 전략상 처음 거론된 가수가 보류 되고, 소속 가수 중에 누구의 뮤비를 찍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지금도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5인조 걸그룹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기로 결정 되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랫 동안 꿈이었던 영화 감독의 체험은 한 것 같다. 40여명의 스텝들이 내 한 마디에 온신경을 기울이고 움직였으니... 하지만 달콤한 경험은 아니었다. 내가 있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기획사에서는 한낱 곡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였고, 기획사에서는 영상 분야에서의 "야메"인 나보다는 사전 기획 과정 중에 메일을 통해서 참여할 수 있도록 부탁한 5위 입상자의 말을 더 신뢰 하였다. 나는 기획사와 5위 입상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중간에 서서 기획사가 이벤트에 대한 입상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 처럼 보이기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내가 써낸 아이디어 제안서는 이 이벤트가 있었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 있었던, 대표이자 가수인 결정권자를 통해 너무도 쉽게 뭍혀 버렸고, 5위 입상자의 프로패셔널한 제안서가 통과 되었다. 어느날 어느 연기 학원에 협조를 요청해서 수강생들의 오디션을 봤는데, 기획사의 담당자한테 연락이 왔다. 오늘 본 사람 중에 "OOO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무조건 캐스팅 해라!" "왜요?" "본부장이 잘 봐달라고 했다" "남자예요? 아님 여자예요?" "모른다" 그리고 약속된 제작 지원금이 제때 입금 되지 않아서... 급히 사금융 대출을 받아야 했고, 제작 중에 발생한 기물 파손 등의 비용은 모두 내가 물어야 해서 오히려 빚만 더 늘었다. 몇차례나 난 이 일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5위 입상자와 기획사의 담당자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내가 필요했을 뿐이다.
수십개의 똑같은 신문들을 통해서 "1위 당선자는 이러한 기회를 준 기획사에 고마워 했다"라고 보도 되었지만 그 프로젝트를 통해서 진정으로 상처를 입은 나는 더이상은 영화인에 대한 꿈과 사업에 대한 꿈에서 갈피를 잃고 헤멜 필요가 없을거라고 생각 했다. 그냥 사춘 누나의 회사에서 안돈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회사에서도 적응 할 수 없었다. 사업가에 대한 꿈은 단순히 열정이라기 보다는 바이러스 같았다. 회사에서 주어진 임무는 현재의 교육 상품을 판매를 하는 것이었고, 나는 회사의 비즈니스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 시키자고 제안 하였지만, 나의 열적적이고 적극적인 제안은 섣부르고 건방졌고, 또 회사가 원하는 동선의 업무가 아니었다. 결국 8개월만에 사표를 쓰고, 제안 했던 그 일을 시작 하였다.
내 아이디어는 기존의 산업 교육에 예체능을 접목 시키는 것이었다.
산업 교육이란, 기업에서 지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리더십,커뮤니케이션,조직활성화,서비스,창의력 등 업무 능력이나 또는 포괄적으로 관련된 역량을 교육 시키는 것이었는데, 모든 교육 기관들이 점점 더 펀 강의와 활동적인 강의 수강식이 아닌 참여식 강의를 트렌드로 하고 있어, 연극이나, 뮤지컬, 댄스,요가 등을 접목하여 교육 과정을 개발하면,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2008년 8월 사업자 등록을 냈다. 군 제대인 2003년 10월 이후 5년도 재 되지 않아 4번째 사업자 등록이었다. 여느 때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자본금은 없었다. 사무실은 은둔형 외톨이 시절에 영상을 만들었던 내 방이었다. 형이 베트남으로 직장을 옮기고 거기서 결혼까지 해서... 난 형 방을 침실로 스고 내 방을 사무실로 썼다.
여전히 소꿉장난같은 시작이었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렵사리 중고차를 한 대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여러 실패들을 통해 얻은 것은 동영상과 이미지 파일을 이용한 인터넷 마케팅에 대한 기술이었고, 또 한 가지는 여러 분야의 예체능에 대한 인맥들이었다 두 명의 댄스 강사와 한 명의 요가 강사에게 활동을 제안하여 시작한 사업에서 2007년 10월부터 3개월동안 500만원도 채 안되는 매출을 올렷다. 월 수익으로 환산하면 6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벌었느냐 보다는 수요가 있다는 것 만으로 가능성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다시 애초애 없었어야 할 진상이었지만, 난 또 다시 실리콘 벨리 CEO들의 창업 초기 청년시절로 돌아갔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지금까지의 많은 실패 경험들이 백신처럼, 위험 요소를 피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도왔는지는 나 스스로 평가하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창업 후 여섯번째 분기의 막바지인 2010년 3월 현재 2010년 3개월간의 1분기 매출은 7300만원 정도이고 1분기 내 월 평균 수익은 세 전 700만원이 조금 안된다.
매출액으로만 따졌을 때 분기별 성장률은 5분기 동안 평균 90.2% 정도를 올리고 있다.
내 스스로에게 있어 이제는 전보다 자신감을 찾았고, 지금의 사업은 이전의 소꿉장난 수준에서는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지만, 학벌에 있어서 여전히 나는 패배자이고, 아직도 가끔은 방통대에라도 진학을 해서 대학원에라도 들어가야지... "교육"이라는 이 지체 높은 시장에서, 회사의 대표로서 깔 맞춤이라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 사업이 지금처럼 무난히 유지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이 글이 시장에 알려져서 내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아고라에 올라오는 청년 실업 관련한 글들을 보면서 아직 때 이른 경거망동이지만, 용기를 주고 싶어, 오늘 아침부터 오전 시간을 할애 하여 이렇게 긴 글을 적고 있다. 위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이 활용한다. 직접적인 직무 교육이 아니고, 당장의 실무 적용이 반영 되는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중소 기업들은 주로 직무에 연관된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직접 주관하는 우리 강사들까지 싸잡아서 학벌 패배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예체능 분야에서 어떤 사람은 리틀 엔젤스 부터 예중, 예고를 거쳐, 소위 한,중,동 및 한예종 출신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강사들도 있다. 중요한건, 강의 만족도, 성과 등이 꼭 학력에 비례 하지는 않거나 어떤 기준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학력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적절할 때 자신의 것을 버리는 것을 어려워 하고, 게런티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좋은 기회를 놓칠 때도 있다.
이를테면..."학창 시절엔 학력과 스펙에 쫓겨 살고, 사회에서는 학력과 스펙에 갖혀 사는 꼴" 이다.
여러 강사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강의 프로그램은 예체능에 대한 스펙이 전무한 본인이 개발 해 왔다.
공기업과 대기업에 갓 입사해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본인이 입사한 회사를 "신의 직장"이라고 표현하며, 수십 또는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승리에 대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다. 요즈음에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4년제 대졸자들을 채용하면, 단체 퍼포먼스를 만들어 신입사원들의 부모님들을 초청해서 발표하는 것이 대세인데, 이를테면, 재롱잔치나 학예회에서 부모님들을 모시는 것가 같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Winner" 들은 자식의 승리를 보고 기쁨에 찬 부모님들 앞에서 "Loser"에게 배운 교육 성과물을 보여주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교육 담당자들이 결국 루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을 얘기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 담당자들은 줄곳 내게... 어쩌다가 이런 사업을 하게 될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그 때 마다 나는 내 전공을 이야기 해 주면서... 전문대 중퇴라는 것과, 좀 더 친해지면 지금까지 말아먹은 사업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그들은 비즈니스 메너 상인지... 아니면 설마, 진심인지... 흥미로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아먹은 사업과 패배의 경험, 전문대 중퇴라고 내세우는 학력까지도... 스펙이 되었다.
방통대를 통한 대학원 진학, 막연한 회화 공부, 이제는 왠만하면, 누구나 다 다녀오는 어학연수 한편으로는 여전히 나도 밀려놓은 일기나 숙제 처럼 쫓기고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 해 보면, 이러한 스펙들이 실질적으로 내 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투자대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강사들의 프로필을 보면 한 줄 씩 적혀있는 악세사리 같은 것 때문에? 아니면 맥주를 마시거나 미팅 자리에서 자랑처럼 늘어놓을 경험담을 위해서... 군대 얘기도 아직 레파토리가 많다. 잘 모르겠다. 도무지... 어쩌면...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에 혹은 "Winner"들의 표상이기 때문에... 당장의 코앞의 원하는 도전을 버리고, 가야 할지는...
난 대학 대신 현장 경험이 더 소중한걸 몸소 체험 했고, 영어 대신 피아노나 기타를... 지금 가진 걸 다 내 팽개치고 도전 할 용기를 갖는다면... 미국이나 캐나다의 어학 연수 보다는 캄보디아나 아이티에 봉사 활동을 가는 것에 쓰고 싶다.
학벌, 전문대중퇴, 경험, 창업,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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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대표선수 pun****
- 멋진 분이군요. 10.03.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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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 hau***
- 아주 좋은글이네요. 10.03.24 16:18
- 푸푸 mks****
-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화이팅 하세요! 10.03.24 16:18
- 텔레파시통신 young_****
- 뉴스추적→ 여검사와 여경이 나에 침실과 용변행위 쳐다보고 있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아..정말 미치겠내 http://cafe.daum.net/s0smindcontrol/E6ye/88 10.03.24 16:08
- 수퍼맨 kimmin2002****
- 잘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이 있기 바람니다. 도전정신 잊지말아야 겠지요 10.03.24 16:01
- 푸른하늘 kkp123****
- 좋은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10.03.24 15:51
- 별똥관동 mcd***
- 멋지네요~ 10.03.24 15:49
- wls wls****
- 용기를 주는 글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10.03.24 15:33
- 나미르 swzon****
- 여기가 니 무료낚시터라도 된다더냐? 10.03.24 15:32
Johnny jwy****
- 낚시글이라는 근거는 있습니까? 10.03.24 16:17
런보리 loveiscome****
- 꽤 나름 진지하게 쓴글 같은데 그따구로 말하면 기분좋니?? 10.03.24 15:47
- 축복가득 bomme****
- 낚시글........ 10.03.24 15:24
런보리 loveiscome****
- 글은 끝까지 다 읽어보셨구요??? 10.03.24 15:28
- 보다좋은세상 lifeinp****
- 열심히 사시는데다 글 재주도 있으시네요. 기업교육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교육콘텐츠를 가지고 있고 어떤 강사들과 함께 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 이멜은 lifeinpeace@naver.com입니다. 10.03.24 15:15
- 라운 ttae****
- 잘 읽었습니다.. 힘차게 나가세요.. 10.03.24 15:13
- dreamweaver frist****
- 그리고 낚시글을 쓰려면 지난글은 좀 지우고 쓰던지.. 어떻게 직업이 글 쓸때마다 바뀌냐 10.03.24 15:03
런보리 loveiscome****
- 지난글중에 어떤글이 직업이 바뀌나요? 10.03.24 15:20
- 인생별거있나 cam****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0.03.24 14:57
- rlatjrgh nono****
- 솔직히 글이 너무 길어요. ㅡ_ㅡ; 10.03.24 14:55
- dreamweaver frist****
- 내가 보기엔 딱 중학생글인거 같은데 아고라가 글쓰기 연습하는데인가? 글에서 어린애 티가 팍팍 나는데.. 나만 느끼나? 10.03.24 14:54
- 근래에 읽은 소설글중에서 정말 최악이네.. 연습 좀하고 올리지.. 약판매회사는 뭐야? 제약회사나 총판이면 몰라도.. 그리고 의약분업하면 좋지 망하긴 왜 망해? 10.03.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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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Duo box****
- 길어서 안읽었다. 10.03.24 14:53
- 중국소수민족 jhk2****
- 임마?젊을때 인생을 알았더라면~난 벌써 대기업 회장 되엇어?? 인생의 삶이 탄탄데로 부모의 뒷받침이 되어~잘 나가는 자가 있으면~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 ~등등 여러 갈래의 인생ㄹ살이가 있지?부모의 역할이 참 중요한데??앞으로 부모가 되는자 자신의 인생을 경험으로 자식에겐~반드시 인생공부의 지침서가 될수 있는 부모~고기잡는 법을 첨부터 가르쳐 주는 부모가 되는 길을 연구 해!!! 10.03.24 12:55
- 미도반 hihii****
- 다른것은잘모르겟지만.. 이것만생각해보면될듯 성공의 의미는 무얼까라는,...여러가지 답이나올것임 그것중에하나를골라좋고 자기나름대로 가치관을 만들면된다고봄 ..대신 주의해야할것은 남의 만들어놓은 길을가게되면 평생 그사람의 밑에서만살다가 그러다가죽는다는것.. 10.03.24 12:51
- 홀애비 youngju****
- 야~~내는 무학이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읍다 10.03.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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