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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로 떳떳이 영화 받아보세요

낭만시잊 2010. 5. 10. 11:58
 

“P2P로 떳떳이 영화 받아보세요”

  이희욱 2010. 05. 09 (2) 사람들, 오픈컬처 |

영화를 극장이나 DVD 타이틀로 보는 대신, 인터넷에서 직접 내려받아 보면 어떨까. 그것도 돈을 내고 웹창고 서비스에서 받지 않고, 개인간 직접 다운로드(P2P) 방식으로 공짜로 본다면?

대개는 이런 방식에 ‘불법’이란 딱지가 붙곤 했지만, 여기선 사정이 다르다. 저작권자나 영화 배급사가 합법적으로 제공하는 영화를 돈 내지 않고 마음껏 내려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 말이다. VODO 얘기다.

VODO는 P2P 영화 공유 서비스다. ‘비트토런트‘ 같은 P2P 공유 서비스로 개인끼리 떳떳이 영화를 돌려본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화제작자나 배급사라면 최대한 많은 관중들에게 영화를 보게 하는 게 목적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제작사와 배급사가 독점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동안 다른 곳에 배포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급했죠. 일부 잘 나가는 영화 외에는 이같은 제도의 혜택을 보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상업성이 희박한 독립영화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화인에게 일부 상업적 권리를 받아서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서비스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거죠.”

영국 독립영화 제작자인 제이미 킹(Jamie King)은 처음부터 인터넷으로 눈을 돌렸다. 그 스스로도 전통적인 영화배급망보다는 인터넷에 더 친숙한 세대였다. 그는 P2P 파일공유 서비스에서 큰 가능성을 봤다. 색다르고 놀라운 체험이었다.

VODO_Jamie_king

“2006년 ‘이 영화를 훔쳐라‘(Steal This Film)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비트토런트로 배포했습니다. 대형 해적사이트 파이어릿베이가 프로모션을 맡았는데, 매우 성공적인 경험이었어요. 지금까지 700만건 이상 내려받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스스로 기부해 모은 돈도 3만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아직도 하루평균 50여개의 트윗과 7편의 블로그 글이 꾸준히 나올 정도에요.”

제이미 킹은 “TV나 상업 영화제작사라면 내 영화를 배급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TV 상영도 하지 않고 영화를 건 개봉관 한 편 없이 오로지 P2P 공유만으로 이룬 성과였다. ‘먼지 쌓인 다른 보석같은 영화들도 이 새로운 채널을 활용하면 어떨까.’ 누가 나서지 않으니 스스로 해보기로 했다. 2008년 서비스 개발에 들어가, 2009년 10월 VODO를 세상에 공식 선보였다.

VODO는 P2P로 영화를 제공하긴 하지만, 여러 면에서 남다르다. VODO에선 여러 영화를 한꺼번에 뿌리지 않는다. 한 달에 영화 딱 한 편만 골라 배급한다.

“이를테면 할리우드 배급 시스템을 P2P에 도입한 겁니다. VODO가 보급하는 영화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작품입니다. 마케팅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해서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한 달여 동안 상영하듯, VODO에서도 한 달에 한 편씩만 집중 밀어주는 셈이죠.”

돈 내지 않고 공짜로 내려받아 볼 수 있다는 점도 상업 인터넷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와 구별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영화를 내려받는 대신,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들면 자발적으로 저작권자에게 양껏 기부하면 된다. 서비스 이름 VODO도 ‘Voluntary Donation’(자발적 기부)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기부금은 오롯이 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 그 대신 VODO는 외부 투자와 광고 유치로 운영비를 충당한다.

“P2P는 공짜 문화에 익숙한 공간입니다. 더구나 인터넷 기부 문화는 막 첫 걸음을 떼는 단계입니다. 기부 문화가 안착될 때까지는 후원도 받고 광고도 싣는 수익모델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어요.”제이미 킹은 “영화 한 편당 100만 다운로드가 이뤄지면 광고를 통한 수익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글로벌 광고대행사와 협상 마지막 단계에 와 있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광고를 넣는 방식을 얘기하고 있는데요. 일반 TV에서 흔히 보는 정형화된 광고가 아니라,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P2P 이용자들 입맞에 맞는 재미있고 독특한 광고를 넣을 생각이에요. 사람들이 재미있는 광고를 보고, 이를 유튜브 같은 서비스로 널리 퍼뜨리고 입소문내는 식으로 마케팅 효과를 낼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상영할 영화를 발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VODO엔 영화평론가나 프로그래머, 전문 제작자 등 전문가로 꾸려진 팀을 두고 있어요. 이들이 영화제나 영화학교, 관련 단체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좋은 영화를 발굴해냅니다. 또한 VODO에 관심을 갖고 먼저 연락을 주는 영화제작자나 창작자에겐 내부 VODO팀이 평가를 거쳐 상영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창작자나 제작사에겐 영화를 어떤 식으로 보급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저작권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죠.”

VODO에서 배급하는 영화는 모두 CCL 저작권 조건을 적용한다. 저작권자는 자기 영화를 상업 용도로 활용하게 할 지, 내용을 마음대로 바꿔 재배포하도록 허용할 지, 아무 조건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쓰도록 할 지 여부를 스스로 고르면 된다.

흥미로운 건, 이같은 독립배급망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는 곳이 적잖다는 사실이다. 예술정책을 수립하고 투자하는 영국 예술위원회를 비롯해 채널4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재단, 에머랄드 펀드 등이 VODO를 받쳐주는 후원자로 나섰다. 20여곳이 넘는 영화 콘텐츠 공급 업체들은 DISCO(Distribution Coalition, 배급 연합)란 이름으로 VODO와 손잡고 영화 수집과 배급을 돕고 있다.

제이미 킹은 요즘 한국 영화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6월에는 CC코리아,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시민문화영상기구 등과 손잡고 ‘제1회 창작과 나눔 영화제‘를 연다. 젊고 참신한 영화들을 발굴하고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배급 기회를 모색하는 행사다. 선정된 작품은 6월3일부터 9일까지 독립영화관 시네마루에서 일주일 동안 상영하고, 우수 작품은 VODO를 통해 전세계로 배포하게 된다.

“한국 포털사이트 한 곳과도 VODO 영화 배급 협력과 관련해 얘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한국지역 콘텐츠 공급자들과도 협력 기회를 갖게 되길 기대하고 있고요. VODO와 비트토런트 이용자들은 대부분 디지털 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한국 전자업체들과 마케팅을 함께 할 기회도 모색해볼 생각이에요.”

VODO는 머잖아 ‘VODO 2.0′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서비스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를 넘어 음악과 책 등으로 배급 대상을 확장하고, 배급 플랫폼도 트위터나 블로그 등으로 넓히는 게 뼈대다.

“DISCO와 협력해 SNS로 영화를 배급하고 프로모션하는 방식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VODO에서 배급 아이디를 발급받고 트위터나 블로그, e메일 등으로 추천 영화 링크를 퍼뜨리는 겁니다. 이 링크를 통해 영화를 내려받은 사람도 배급 아이디를 받게 되죠. 이런 식으로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영화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얼마나 퍼져나갔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많이 퍼뜨린 사람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피라미드 시스템이죠, 하하.”

제이미 킹은 인터넷이 전통 배급망을 넘어서는 큰 기회와 잠재력을 안고 있다고 믿는다. 영화 외에 책과 음악 분야까지 배급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믿음에서다.

“현재 ‘VODO 플레이어’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VODO 리스트에 있는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죠. 유료 가입자에겐 ‘VODO 매거진’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아이패드같은 기기에서 VODO가 제공하는 영화나 음악, 책을 소비하는 새로운 경험을 즐기게 해 주는 겁니다. 수많은 영화나 음악, 책 가운데 특정 작품을 이용자가 골라 보도록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우리는 네트워크만 연결돼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수많은 VODO 이용자들이 특정 작품을 콕 집어 밀어주는 것, 그게 바로 VODO 네트워크가 가진 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