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신림동 ‘꽃거지’ 아저씨를 아시나요?

낭만시잊 2009. 8. 21. 16:46

신림동 ‘꽃거지’ 아저씨를 아시나요?
서울 신림동 인근에는 꽃미남 외모를 지닌 노숙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수년째 화제가 되고 있다. 진위를 의심하는 이들이 많지만 신림역을 지나치거나 신림동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일명 그는 ‘신림동 꽃거지’로 불리며 이미 유명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절대로 구걸하지 않으며 언제나 시크한 표정과 모델처럼 당당한 포즈로 신림역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고 한다. 이런 그를 두고 사실 어느 대기업 후계자인데 세상 공부를 하기 위해 잠시 걸인 흉내를 내고 다닌다는 추측까지 돌고 있을 정도다.

몇 년간의 지속적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선 아직 직접 본 사람들의 후기 외엔 별다른 정보나 알려진 사실이 없었다. 모델처럼 큰 키와 긴 팔다리로 남다른 포즈를 과시한다는 그는 과연 누구이며 어떤 연유로 수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그가 택한 곳이 신림동인지. 인턴기자들은 이런 궁금증을 안고 신림역으로 그를 직접 찾아 나섰다.




체격: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마스크: 배우 원빈과 이민기를 반반씩 섞은 듯한 얼굴 생김새
의상: 카키색 누빔 점퍼와 같은 색의 바지, 회색 산타할아버지 가방을 매고 다님
특징: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한 포즈와 시크한 눈빛
특히 앉은 상태에서 팔을 뒤로 쭉 뻗고 가슴을 쫙 펼친 일명 ‘최강창민’ 포즈로 유명
출몰지역: 신림역 3,4번 출구 방향 광장, 4번 출구 쪽 상권 밀집구역

이 정도가 취재 전 인턴기자들이 그에 대해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정보의 전부다. 무작정 신림역으로 나서 발품을 팔고 사방팔방으로 조사한 결과, 세 번째 취재에서 드디어 말로만 듣던 그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역무원의 단속을 피해 지하철역 광장 한 구석에 유유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살펴보기로 했다.

신림역 광장.

먼발치에서 지켜봐도 180㎝는 훌쩍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에 조막만한 얼굴, 모든 여성들의 이상형인 원빈과 이민기를 고루 섞어 놓은 듯한 잘생긴 얼굴의 연령미상의 남성이었다. 해진 누빔점퍼마저 ‘그런지룩’(낡아서 해진 듯한 의상으로 편안함과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으로 소화해 낼 만큼 모델수준의 황금비율 체격을 갖춘 그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지나가다 뒤돌아서 한 번쯤은 보고 갈 만큼 훌륭한 외모를 갖췄다.

그는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홀로 너털웃음을 짓기도 하고 그들을 향해 인생을 달관한 듯한 눈빛을 보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를 목격했다는 이들은 이런 미묘한 분위기를 내는 꽃거지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고 인터넷에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삼십분 가량 주위를 맴돌며 일단 그의 동태를 파악한 뒤, 그가 좋아한다는 캔커피를 뽑아 전해주며 자연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고 어렵사리 짧은 인터뷰에 대한 승낙을 얻어냈다. 사진도 얼굴 모자이크를 하는 선에서 허락을 받았다.

가까이 다가서서 이야기를 나누니 범상치 않은 그의 외모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다음 놀란 것은 나이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추정하던 네티즌들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자신의 나이가 40대 초반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래 서울 구로동 출신이지만 학창시절부터 즐겨 찾던 이곳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5년이 좀 넘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신림동 꽃거지’라고 불리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사실 이 질문을 할 때, 거지란 표현을 면전에 직접 대고 해야 한다는 게 참 조심스럽고 죄송했다) 신림동 일대에서는 그를 두고 ‘모델 거지’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는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신림동 꽃거지’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인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많은 학생들이 오다가다 또는 호기심에 그를 보러와 차마 가까이 다가오진 못하고 멀리서 사진을 찍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공중파 방송국에서 그를 취재하기 위해 온 적도 있었지만 TV 출연은 부담스러워 거절했었다고 했다.

그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겨울용 긴소매 누빔 점퍼와 긴 바지차림이었다. “덥지 않냐”고 묻자, 괜찮다고 답하며 늘 어디로든 떠날 준비를 한 상태로 다녀야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주 활동무대는 신림역을 중심으로 한 신림동 일대이고, 가끔 지하철을 이용해 명동이나 동대문 부근으로 바깥동네 출입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의 평균 기상시간은 오전 8시. 식사는 돈이 있으면 보통 편의점에서 간단히 분식류로 해결하는 편. 월 평균 수입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많을 때는 보통 20만 원정도 된다고 했다.

그에게 직업이 있었거나 구직활동을 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무슨 일을 했었냐고 묻자, 그 이전에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과 똑같이 “그냥 남들 하는 일, 평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난히 “남들 하는 만큼, 남들처럼 평범하게”와 같은 어휘를 자주 사용했다. 남들만큼 그저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냉혹하고 각박한 현실은 결국 그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느냐고 부탁드리자, 그는 처음으로 조금은 진지하게 질문에 응했다. 사실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는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약간 불편하고 산만해 보였다. 그러던 그가 맑은 눈빛으로 기자들을 바라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런 말하기 쑥스럽고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원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소박한 꿈이 있고 평범한 미래를 꿈꿨던 우리 시대의 한 ‘예비 가장’이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는 ‘잉여인간’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어 직업이 없는, 남아도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구직자는 날로 늘어만 가는데 경제는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일자리는 늘 부족하다. 결국 누군가는 일자리를 얻는데 실패한다. 사회가 잉여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치열한 삶에서 탈락해 이 곳에 온 것은 아닐까.

길 옆에 앉아 있는 노숙자가 너무 잘생긴 남자라서 놀라서 한번 돌아보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기서 그와 눈이 마주치면 한번 더 놀란다. 5년이 넘는 노숙생활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마음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졌을 법도 한데, 그의 맑고 순수한 눈빛은 오히려 그를 바라보는 편견들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용직 기자/yjc@heraldm.com 오영경ㆍ김하정 인턴기자/amourkyung@naver.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