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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버거

낭만시잊 2009. 3. 18. 12:10

CEO 열전> 세번째 인터뷰는 '영철버거'로 잘 알려진 이영철 대표(이하 이대표)를 만나고자 고대 안암동 본점으로 찾아갔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연락을 드렸을 때 어떤 인터뷰인지 보다는 저녁시간에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할 때 너무나 고마웠다. 인터뷰 요청도 힘들지만 바쁜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만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 늦은 저녁이라 편하게 인터뷰 할 수 있었고, 이대표가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곳(매장 한쪽 귀퉁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에서 영철버거와 이영철대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인터뷰 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망설임도 있었지만 내가 자세히 모르고 거절한다는 것은 뭔가 그래서 만나 뵙고 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성공한 사람, 더러는 돈 많이 번 사람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속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많은 꿈을 안고 가는거죠.
돈 많이 버니까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구나" 그런 마음을 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은 들지 않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씩 지금까지 총 1억200만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남 보기엔 번듯하게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16~17시간 동안 점포에서 일한다.
‘영원한 약속’이라고 광고했던 영철버거는 2008 2월1일 끝내 1500원으로 올렸다.

2005년엔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해냄출판사)'라는 에세이집 출간



- 영철버거의 영원한 약속이었던 1000원짜리 버거를 1500원으로 지난해 2월 올렸는데, 이후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1년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몇 년전 북세미나 인터뷰에서도 끝까지 간다고 했는데, 가격 올릴 때는 두 갈래 결정을 해야 될 사안이었어요. 하나는 정으로 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버렸고, 그때 당시만 해도 고대생 고객이 80% 만 되었다고 해도 끝까지 갔었을 텐데, 그 나마 전세까지 얻은 거 마저 팔 때까지 지켜볼려고 했었는데, 일반고객이 50% 정도였고 고대생 고객이 50% 였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을 했었어요. "가격을 올리면서 장사속에 사업가로 남기는 싫다, 그만하고 떠나야 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많은 졸업생들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내 나름대로는(2000년 부터 9년째 1000원짜리로 고수) 희생 많이 했고, 물질적(돈) 보다는 내 마음속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한테 배려하고 희생을 했는데,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사업을 접어야 할까? 아님 가격을 올려야 할까? 결국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결론이 내고, 가격을 올렸어요."
결국 손님은 많이 줄어서 1년 동안은 엄청난 적자를 봤구요,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원위치로 올라왔아요. 1000원짜리를 1500원 주고 먹으려면 상당히 고민하게 되거든요. 오는 분들이 너무 많이 올렸다고 하시는데, 이미 그 전에 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누적이 되었던 거구요, 가격을 올린 부분에 대해서 지금은 많이 잊혀진 듯 합니다. 그 외 또 다른 영철버거(메뉴 다양화)가 자리매김 한 것 같아요.


- 전국에 영철버거 가맹점이 몇 개나 되나요.
예전에는 40개 정도 되었는데, 많이 없어지고 지금은 10여개 남았어요. 왜냐면 영철버거 가맹점 했던 분들이 아주 서민적인 분들이 하나의 희망을 삼으려고 했는데, 그 만큼 없는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까, 고객에 대한 부분이나 이익에 대한 부분에서 빨리 따라주지 않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고객도 많이 않고, 수익도 따라주지 않아서)


- 영철버거 가맹점 비용은 받으셨는지.
처음에는 안받고 해주었어요. 자꾸 그러다 보니까 취지가 많이 틀어지더군요. 쉽게 이야기해서 금액을 안 받고 내다 보니까 쉽게 쉽게 생각하는 거고, 하다가 안되면 접지라는 그런 안이함을 가진거죠. 기뿐 마음으로 그분들이 열심히 살려고 할 때, 저도 어려운 적이 있었기에 사랑도 많이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 전달을 해야지 했는데, 그게 결국은 그분들을 망가뜨리지 않았나 생각을 가졌어요.
그분들이 기술을 배울 때 본점(고대안암동)에서 하게 되는데, 그건 또 하나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 되요. 왜냐면 이곳에는 끊임없이 고객이 오는데, 다른데(처음부터는) 아무래도 기다려야 하니까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 영철버거 가맹점이 늘기 보다는 줄어드는 이유는.
지난 해까지 종각에서 영철버거가 있었는데 잘 안되어서 철수했죠. 이런 실패를 하고 나서 나름대로 공부를 시도했죠. "영철버거가 한국의 토종버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건가, 정말 고대(본점)에만 하나의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건가" 그래서 종각에 내 봤는데 실패했죠. 종각에는 샐러리맨(회사원)이다 보니까 법인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 싼 걸 안 먹는 겁니다. 그 부분을 몰랐던 거구요, 경험으로 "이건 아니다, 내가 뭔가 실패 한거다, 영철버거 장점은 심플한 디자인에서 고객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컨셉으로 갔었는데, 본점은 콜라도 공짜인데 왜 여긴 돈을 받느냐" 이런 자꾸 문제점들이 부딪히더군요. 종각을 접고 다시 신설동에 하나를 냈어요.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고, 이곳은 인테리어도 아주 고급스럽게 하고, 테이블도 놓고, 커피도 판매하고, 셋트 메뉴도 다양하게 만들고, 음료도 별도 비용을 받는데 고객들이 본점(5분거리)하고 가장 가까운데 불구하고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아 이래 이렇게 영철버거가 발전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 가맹점을 늘리려면 늘리는데, 40여개 나가고 문제점을 파악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안내 준거죠. “이런 문제점을 찾기 전까지는 가맹점이 나가면 영철버거 이미지가 흐려지고, 내 자체적으로 투자를 해서 부족된 부분을 채어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신설동 매장을 했구요, 처음 6개월 동안 많은 적자를 봤는데 지금은 본궤도에 올랐어요.


- 처음 시작한 영철버거 노점상 위치는 어디인가요, 얼마 동안 했는지.
노점상을 한 곳은 지금의 영철버거 본점 건너편(맞은편) 골목입니다. 현재는 커피빈이 있고, GS25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점상은 2년정도 했구요, 이후에는 영철버거 매장(6평정도)을 3년째 하다가 커피빈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본점)의 자리에 오게 된 겁니다. (4년째 운영 중)


- 하루동안 판매되는 영철버거는.
하루 1500개 정도입니다. ‘영철 street 버거’는 1000개가 좀 안 나가고, 메뉴가 다양화 되니까 다른 것이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메뉴가 다양화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구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메뉴 다양화는 지난해 부터 활성화 됨)
메뉴 다양화를 통해 매출 증대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인건비 지출 문제, 다양한 식품재료가 들어가면서 순이익이 떨어지고요, 단일품목 판매 할 때에 비해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신 메뉴가 나오더라도 어렵다 보니까 가격대를 비싸게 못 맞춰요, 최대한 맥시멈 맞추어야 고객들이 찾게 되는 거고, ‘영철버거’라는 브랜드가 아직까지는 약하기 때문에 중가로 낮춰서 판매하다 보니까 수익부분이나 관리 부분이 많이 약하죠.


전에는 일반 포장마차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영철버거(햄버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당시 포장마차에서 햄버거를 판매는 생소한 것 아니었는지.
어려서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외식산업에 많이 있었구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인생공부가 된듯하고. 그런 재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가 없었을 거다. 서비스라는 것은 메뉴얼이 아니라 내 몸에 베어있었던 것 같다" 말하곤 하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건축일 했었는데, 사회 살아가면서 신용은 지켜야겠다 했죠. 근데 건축일 하다보니까 신용 없는데가 건축일이예요. 어려서부터 가끔 책을 봐도 유명한 분들은 다들 신용이라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는데, 제가 하는일은 신용을 지키려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구요. 이건 아닌 것 같다 생각했고, 그때 마침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움직일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점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고, 노점을 하기 위해서 리어카를 끌고 나왔을 때는 제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소하더군요. 노점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서로 안된 분들이 안아주고 보듬어 줄 줄 알았는데 더 내치는 거예요. 똑 같은 상황에서 더 내치더군요. "아~ 오죽하면 젊은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겠는가" 땡겨주고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밀어 내려고만 하니까, 가면 갈 수록 더 무섭더군요.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은 "인생을 헛 살았구나" 하는 겁니다. 왜 그분이 그럴 수 밖에 없었나 고민했던게, 오로지 절박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자기네가 다치니까, 밥 그릇을 뺏긴다고 이분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같으면 같이 몰려있으면 더 잘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분들은 너가 들어오면 내거 빼어 먹는다고 생각만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그런 부분들이 너무 싫더라구요. 그런걸 느꼈을 때 "세상 다시 살아야 하는구나" 많이 생각했고, 아픔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심하더군요.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럼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말고 색다른 것을 해보자, 그럼 나를 덜 밀어내는 거 아니냐, 자기네 분야가 틀리니까, 그렇게 해서 예전 레스토랑에서 했던 멕시칸버거(샐러드 넣고)를 만든 거죠. 당시 반응은 괜찮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이 부족했지만, 그리고 나서 그때 잘했던 것이 오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만든 것이 있는데 어떤지, 뭐가 부족한 것은 없는지, 그런 걸 자꾸 물어 봤던게, 오늘날의 나를 만든게 아닌가 생각해요.
학생들이 "여긴 소스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고기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자꾸 입맛에 맞추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입맛이 되었구요, 지금의 영철버거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전문가분들이 곁에 두고 새로운 메뉴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운영하면서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제 욕심부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너무너무 행복해요. 쉽게 이야기 하면, 많은 졸업생들이 저의 꾸지람과 저는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지식을 얻었고, 저의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서로간의 멘토가 되어 가지고, 그게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 보람을 느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지금 인터뷰(매장에서)하는 공간이 왜 만들어졌냐면 졸업하고 사회 나간 학생들이 찾아와요, 학교를 들르면 꼭 들렸다 가요. 그러면 예전하고 틀리잖아요. 그냥 빵만 먹으면서 얘기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기와서 커피한잔도 하면서 자기의 고민, 나의 고민, 서로 털어놓은 그런 쉼터가 된거죠. 그런 부분이 가장 보람되고, 그들로 하여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죠.
졸업생들에게 이런말을 해요 "사람들은 다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존경 받는 성공이 있고, 잠깐 그 사람 돈 많은 그런 성공이 있다"고,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에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런 내용들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환경이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 '영철버거'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어떻게 생겨 난 건가요.
시립대-외대에서 장사할 때, 동그란 햄버거(멕시칸 햄버거)를 팔았는데 어떤 여학생이 아이디어를 주었고, 아저씨 이름을 딴 '영철 street 버거'를 파는 것이 낫겠다 해서 시작했구요.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본점만 갖고 있구요, 그리고 상호 특허를 '영철버거' 로 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영철버거'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어느 누군가 한테 미안하다 마음을 같고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든지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좀 아닌데, 저는 가장 고마웠던게, 1000원짜리 버거를 먹으러 오묜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객을 숙이고 매장에 오니까, 내가 뭔가 열의를 쏟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황사가 오면 문을 내렸어요. "학생들한테 위생적인 만큼은 팔아서 안 된다 장사에 많은 이윤이 오더라도 손해를 봐야겠다" 라는 마음에 서로간의 마음의 사랑이 영철버거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모든 걸 여기다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열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영철버거를 지금도 자주 먹나요. 장사하는 동안 몇 개 정도나 먹었는지.
그럼요, 지금도 자주 먹죠. 요즈음 메뉴 개발 하면서 자주 먹게 되니까 빵이 좀 질려요. 그래도 먹어봐야만 잘못된 부분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계속 먹고 있죠. 식사대용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9년 넘게 해오고 있고 매일 한 개이상 먹다보니 4000~5000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원들도 끝나고 남은 것은 싸가요, 여기서 배운것은 모든게 한결 같아야지, “내 가족은 좋은 거 먹고, 파는 것을 다르게 해서는 안 된다. 내거랑 똑 같은 마음에서 똑같이 먹고 그래야만이 정말 멋진 인생을 사는거다. 그 만큼 내가 자신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둘째가 영철버거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 그만두고 영철버거를 물려받는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하하하)


- 초등학교 4학년 중퇴, 마음 한구석에 아픔은 있지 않나요.
큰 애 학원공부 하는데 태우러 갔는데 딸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갈게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아빠가 공부의 한이 되잖아요" "아빠 그런거 한 안돼, 왜 한이 안 돼냐면 아빠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이 안돼, 근데 네가 열심히 배워야 되는가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 조건이 되어야만 남한테 도와줄 수가 있다, 아빠는 너에게 그걸 원하는 거지, 많이 배워 편하게 세상 사는게 아니라, 네가 소리낼 수 있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만 되어주면 바란다. 아빠는 열등의식 없고, 앞으로 꿈이 있단다"
여기서 꿈은 50대면(지금은 42살) 공부하려고요. 지금 공부를 많이 하면 살이 많이쪄서 안되고요. 쉽게 이야기해서 저의 본질을 잃어버려요.

돈이 있으면 행복한 거라고 느끼는데, 이렇게 사는 것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분들이 별로 없는 거예요. 오로지 현실에만 자본에만 결과치를 놓고 보니까 안쓰럽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만이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철버거 오면 어떤 서비스를 준다" 라는 것이 있는지.
희망이죠. 돈보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그 과정을 겪어 왔잖아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 그런 현실을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근데 세상 바라보는 것은 자기 할 탓이다. 자기가 늘 남을 배려하고, 남을 사랑해야만 남도 자기를 사랑 할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서 나는 또 다른 빛을 볼 것이다. 요즈음 많은 젋은이 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좌절하고, 자살도 하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도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나왔지, 뭐가~ 너희들 보다 잘난게 있냐, 집안이 대단하냐, 그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희망이라는 끄나풀이 되고 싶고 현실에 그런 인물로 남고 싶습니다.
"내 목표는 성공은 돈이다" 아니라는 거죠. 나는 이렇게 어려운 과정에 천대받고, 폐인이 될 정도까지 갔었지만, 내가 그걸 바꿔어서 생각해 보니까 뭐든 세상 사람들이 내 편이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 딸아이도 아빠로 인해서 더 노력하더군요.

과거, 가맹점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은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으로서는 많이 아쉽죠.


- 어려운 경제 위기, 영철버거는 어떻게 이겨내실 건지.
▷  장사가 안 어려운 적이 없었던 것 같더군요. 3년전 인터뷰 할 때도 아나운서가 경기가 어렵다고 했거든요. 모든 것이 마음 가짐이지, 우리 나라가 경기 어렵지 않을 때 없었을 겁니다. 단지 좀 경제상황이 좋아서 여유는 잠깐 있을 수 있었으나 그건 단기간이었고, 그런 부분은 마음가짐이지, 어떻게 살아가느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전 IMF 같지가 않아요,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싼거부터 찾았는데, 이제는 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그 만큼 퀄리티가 좋아졌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얼마든지 투자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운영해 나간다면 충분히 영철버거도 잘 될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1분 동영상 - 영철버거 아저씨로 시작되는 '희망의 메시지'




CEO 인터뷰는 계속 될 것이다. 네번째 인터뷰는 크라제버거 민병식대표이다.


<CEO 열전>은 그속에서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꿈과 야망으로 똘똘 뭉쳐 어려운 경제 위기를 헤쳐가는 우리의 사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직원분들에게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사장님을 찾아보고자 한다.
분명 어려운 생활도 있을 것이고, 절망속에 빠져 힘들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런 인생역전 드라마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기획 의도는  '사장도 사람이다' , '성공에는 원칙이 있다', '성공하려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전달' 등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장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자 <CEO 열전> 을 진행하고자 한다.


CEO 열전> 세번째 인터뷰는 '영철버거'로 잘 알려진 이영철 대표(이하 이대표)를 만나고자 고대 안암동 본점으로 찾아갔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연락을 드렸을 때 어떤 인터뷰인지 보다는 저녁시간에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할 때 너무나 고마웠다. 인터뷰 요청도 힘들지만 바쁜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만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 늦은 저녁이라 편하게 인터뷰 할 수 있었고, 이대표가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곳(매장 한쪽 귀퉁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에서 영철버거와 이영철대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인터뷰 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망설임도 있었지만 내가 자세히 모르고 거절한다는 것은 뭔가 그래서 만나 뵙고 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성공한 사람, 더러는 돈 많이 번 사람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속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많은 꿈을 안고 가는거죠.
돈 많이 버니까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구나" 그런 마음을 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은 들지 않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씩 지금까지 총 1억200만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남 보기엔 번듯하게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16~17시간 동안 점포에서 일한다.
‘영원한 약속’이라고 광고했던 영철버거는 2008 2월1일 끝내 1500원으로 올렸다.

2005년엔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해냄출판사)'라는 에세이집 출간


- 영철버거의 영원한 약속이었던 1000원짜리 버거를 1500원으로 지난해 2월 올렸는데, 이후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1년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몇 년전 북세미나 인터뷰에서도 끝까지 간다고 했는데, 가격 올릴 때는 두 갈래 결정을 해야 될 사안이었어요. 하나는 정으로 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버렸고, 그때 당시만 해도 고대생 고객이 80% 만 되었다고 해도 끝까지 갔었을 텐데, 그 나마 전세까지 얻은 거 마저 팔 때까지 지켜볼려고 했었는데, 일반고객이 50% 정도였고 고대생 고객이 50% 였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을 했었어요. "가격을 올리면서 장사속에 사업가로 남기는 싫다, 그만하고 떠나야 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많은 졸업생들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내 나름대로는(2000년 부터 9년째 1000원짜리로 고수) 희생 많이 했고, 물질적(돈) 보다는 내 마음속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한테 배려하고 희생을 했는데,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사업을 접어야 할까? 아님 가격을 올려야 할까? 결국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결론이 내고, 가격을 올렸어요."
결국 손님은 많이 줄어서 1년 동안은 엄청난 적자를 봤구요,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원위치로 올라왔아요. 1000원짜리를 1500원 주고 먹으려면 상당히 고민하게 되거든요. 오는 분들이 너무 많이 올렸다고 하시는데, 이미 그 전에 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누적이 되었던 거구요, 가격을 올린 부분에 대해서 지금은 많이 잊혀진 듯 합니다. 그 외 또 다른 영철버거(메뉴 다양화)가 자리매김 한 것 같아요.


- 전국에 영철버거 가맹점이 몇 개나 되나요.
예전에는 40개 정도 되었는데, 많이 없어지고 지금은 10여개 남았어요. 왜냐면 영철버거 가맹점 했던 분들이 아주 서민적인 분들이 하나의 희망을 삼으려고 했는데, 그 만큼 없는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까, 고객에 대한 부분이나 이익에 대한 부분에서 빨리 따라주지 않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고객도 많이 않고, 수익도 따라주지 않아서)


- 영철버거 가맹점 비용은 받으셨는지.
처음에는 안받고 해주었어요. 자꾸 그러다 보니까 취지가 많이 틀어지더군요. 쉽게 이야기해서 금액을 안 받고 내다 보니까 쉽게 쉽게 생각하는 거고, 하다가 안되면 접지라는 그런 안이함을 가진거죠. 기뿐 마음으로 그분들이 열심히 살려고 할 때, 저도 어려운 적이 있었기에 사랑도 많이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 전달을 해야지 했는데, 그게 결국은 그분들을 망가뜨리지 않았나 생각을 가졌어요.
그분들이 기술을 배울 때 본점(고대안암동)에서 하게 되는데, 그건 또 하나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 되요. 왜냐면 이곳에는 끊임없이 고객이 오는데, 다른데(처음부터는) 아무래도 기다려야 하니까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 영철버거 가맹점이 늘기 보다는 줄어드는 이유는.
지난 해까지 종각에서 영철버거가 있었는데 잘 안되어서 철수했죠. 이런 실패를 하고 나서 나름대로 공부를 시도했죠. "영철버거가 한국의 토종버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건가, 정말 고대(본점)에만 하나의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건가" 그래서 종각에 내 봤는데 실패했죠. 종각에는 샐러리맨(회사원)이다 보니까 법인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 싼 걸 안 먹는 겁니다. 그 부분을 몰랐던 거구요, 경험으로 "이건 아니다, 내가 뭔가 실패 한거다, 영철버거 장점은 심플한 디자인에서 고객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컨셉으로 갔었는데, 본점은 콜라도 공짜인데 왜 여긴 돈을 받느냐" 이런 자꾸 문제점들이 부딪히더군요. 종각을 접고 다시 신설동에 하나를 냈어요.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고, 이곳은 인테리어도 아주 고급스럽게 하고, 테이블도 놓고, 커피도 판매하고, 셋트 메뉴도 다양하게 만들고, 음료도 별도 비용을 받는데 고객들이 본점(5분거리)하고 가장 가까운데 불구하고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아 이래 이렇게 영철버거가 발전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 가맹점을 늘리려면 늘리는데, 40여개 나가고 문제점을 파악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안내 준거죠. “이런 문제점을 찾기 전까지는 가맹점이 나가면 영철버거 이미지가 흐려지고, 내 자체적으로 투자를 해서 부족된 부분을 채어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신설동 매장을 했구요, 처음 6개월 동안 많은 적자를 봤는데 지금은 본궤도에 올랐어요.


- 처음 시작한 영철버거 노점상 위치는 어디인가요, 얼마 동안 했는지.
노점상을 한 곳은 지금의 영철버거 본점 건너편(맞은편) 골목입니다. 현재는 커피빈이 있고, GS25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점상은 2년정도 했구요, 이후에는 영철버거 매장(6평정도)을 3년째 하다가 커피빈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본점)의 자리에 오게 된 겁니다. (4년째 운영 중)


- 하루동안 판매되는 영철버거는.
하루 1500개 정도입니다. ‘영철 street 버거’는 1000개가 좀 안 나가고, 메뉴가 다양화 되니까 다른 것이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메뉴가 다양화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구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메뉴 다양화는 지난해 부터 활성화 됨)
메뉴 다양화를 통해 매출 증대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인건비 지출 문제, 다양한 식품재료가 들어가면서 순이익이 떨어지고요, 단일품목 판매 할 때에 비해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신 메뉴가 나오더라도 어렵다 보니까 가격대를 비싸게 못 맞춰요, 최대한 맥시멈 맞추어야 고객들이 찾게 되는 거고, ‘영철버거’라는 브랜드가 아직까지는 약하기 때문에 중가로 낮춰서 판매하다 보니까 수익부분이나 관리 부분이 많이 약하죠.


전에는 일반 포장마차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영철버거(햄버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당시 포장마차에서 햄버거를 판매는 생소한 것 아니었는지.
어려서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외식산업에 많이 있었구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인생공부가 된듯하고. 그런 재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가 없었을 거다. 서비스라는 것은 메뉴얼이 아니라 내 몸에 베어있었던 것 같다" 말하곤 하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건축일 했었는데, 사회 살아가면서 신용은 지켜야겠다 했죠. 근데 건축일 하다보니까 신용 없는데가 건축일이예요. 어려서부터 가끔 책을 봐도 유명한 분들은 다들 신용이라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는데, 제가 하는일은 신용을 지키려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구요. 이건 아닌 것 같다 생각했고, 그때 마침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움직일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점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고, 노점을 하기 위해서 리어카를 끌고 나왔을 때는 제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소하더군요. 노점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서로 안된 분들이 안아주고 보듬어 줄 줄 알았는데 더 내치는 거예요. 똑 같은 상황에서 더 내치더군요. "아~ 오죽하면 젊은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겠는가" 땡겨주고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밀어 내려고만 하니까, 가면 갈 수록 더 무섭더군요.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은 "인생을 헛 살았구나" 하는 겁니다. 왜 그분이 그럴 수 밖에 없었나 고민했던게, 오로지 절박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자기네가 다치니까, 밥 그릇을 뺏긴다고 이분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같으면 같이 몰려있으면 더 잘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분들은 너가 들어오면 내거 빼어 먹는다고 생각만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그런 부분들이 너무 싫더라구요. 그런걸 느꼈을 때 "세상 다시 살아야 하는구나" 많이 생각했고, 아픔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심하더군요.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럼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말고 색다른 것을 해보자, 그럼 나를 덜 밀어내는 거 아니냐, 자기네 분야가 틀리니까, 그렇게 해서 예전 레스토랑에서 했던 멕시칸버거(샐러드 넣고)를 만든 거죠. 당시 반응은 괜찮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이 부족했지만, 그리고 나서 그때 잘했던 것이 오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만든 것이 있는데 어떤지, 뭐가 부족한 것은 없는지, 그런 걸 자꾸 물어 봤던게, 오늘날의 나를 만든게 아닌가 생각해요.
학생들이 "여긴 소스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고기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자꾸 입맛에 맞추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입맛이 되었구요, 지금의 영철버거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전문가분들이 곁에 두고 새로운 메뉴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운영하면서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제 욕심부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너무너무 행복해요. 쉽게 이야기 하면, 많은 졸업생들이 저의 꾸지람과 저는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지식을 얻었고, 저의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서로간의 멘토가 되어 가지고, 그게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 보람을 느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지금 인터뷰(매장에서)하는 공간이 왜 만들어졌냐면 졸업하고 사회 나간 학생들이 찾아와요, 학교를 들르면 꼭 들렸다 가요. 그러면 예전하고 틀리잖아요. 그냥 빵만 먹으면서 얘기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기와서 커피한잔도 하면서 자기의 고민, 나의 고민, 서로 털어놓은 그런 쉼터가 된거죠. 그런 부분이 가장 보람되고, 그들로 하여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죠.
졸업생들에게 이런말을 해요 "사람들은 다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존경 받는 성공이 있고, 잠깐 그 사람 돈 많은 그런 성공이 있다"고,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에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런 내용들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환경이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 '영철버거'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어떻게 생겨 난 건가요.
시립대-외대에서 장사할 때, 동그란 햄버거(멕시칸 햄버거)를 팔았는데 어떤 여학생이 아이디어를 주었고, 아저씨 이름을 딴 '영철 street 버거'를 파는 것이 낫겠다 해서 시작했구요.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본점만 갖고 있구요, 그리고 상호 특허를 '영철버거' 로 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영철버거'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어느 누군가 한테 미안하다 마음을 같고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든지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좀 아닌데, 저는 가장 고마웠던게, 1000원짜리 버거를 먹으러 오묜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객을 숙이고 매장에 오니까, 내가 뭔가 열의를 쏟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황사가 오면 문을 내렸어요. "학생들한테 위생적인 만큼은 팔아서 안 된다 장사에 많은 이윤이 오더라도 손해를 봐야겠다" 라는 마음에 서로간의 마음의 사랑이 영철버거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모든 걸 여기다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열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영철버거를 지금도 자주 먹나요. 장사하는 동안 몇 개 정도나 먹었는지.
그럼요, 지금도 자주 먹죠. 요즈음 메뉴 개발 하면서 자주 먹게 되니까 빵이 좀 질려요. 그래도 먹어봐야만 잘못된 부분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계속 먹고 있죠. 식사대용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9년 넘게 해오고 있고 매일 한 개이상 먹다보니 4000~5000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원들도 끝나고 남은 것은 싸가요, 여기서 배운것은 모든게 한결 같아야지, “내 가족은 좋은 거 먹고, 파는 것을 다르게 해서는 안 된다. 내거랑 똑 같은 마음에서 똑같이 먹고 그래야만이 정말 멋진 인생을 사는거다. 그 만큼 내가 자신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둘째가 영철버거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 그만두고 영철버거를 물려받는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하하하)


- 초등학교 4학년 중퇴, 마음 한구석에 아픔은 있지 않나요.
큰 애 학원공부 하는데 태우러 갔는데 딸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갈게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아빠가 공부의 한이 되잖아요" "아빠 그런거 한 안돼, 왜 한이 안 돼냐면 아빠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이 안돼, 근데 네가 열심히 배워야 되는가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 조건이 되어야만 남한테 도와줄 수가 있다, 아빠는 너에게 그걸 원하는 거지, 많이 배워 편하게 세상 사는게 아니라, 네가 소리낼 수 있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만 되어주면 바란다. 아빠는 열등의식 없고, 앞으로 꿈이 있단다"
여기서 꿈은 50대면(지금은 42살) 공부하려고요. 지금 공부를 많이 하면 살이 많이쪄서 안되고요. 쉽게 이야기해서 저의 본질을 잃어버려요.

돈이 있으면 행복한 거라고 느끼는데, 이렇게 사는 것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분들이 별로 없는 거예요. 오로지 현실에만 자본에만 결과치를 놓고 보니까 안쓰럽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만이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철버거 오면 어떤 서비스를 준다" 라는 것이 있는지.
희망이죠. 돈보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그 과정을 겪어 왔잖아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 그런 현실을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근데 세상 바라보는 것은 자기 할 탓이다. 자기가 늘 남을 배려하고, 남을 사랑해야만 남도 자기를 사랑 할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서 나는 또 다른 빛을 볼 것이다. 요즈음 많은 젋은이 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좌절하고, 자살도 하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도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나왔지, 뭐가~ 너희들 보다 잘난게 있냐, 집안이 대단하냐, 그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희망이라는 끄나풀이 되고 싶고 현실에 그런 인물로 남고 싶습니다.
"내 목표는 성공은 돈이다" 아니라는 거죠. 나는 이렇게 어려운 과정에 천대받고, 폐인이 될 정도까지 갔었지만, 내가 그걸 바꿔어서 생각해 보니까 뭐든 세상 사람들이 내 편이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 딸아이도 아빠로 인해서 더 노력하더군요.

과거, 가맹점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은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으로서는 많이 아쉽죠.


- 어려운 경제 위기, 영철버거는 어떻게 이겨내실 건지.
▷  장사가 안 어려운 적이 없었던 것 같더군요. 3년전 인터뷰 할 때도 아나운서가 경기가 어렵다고 했거든요. 모든 것이 마음 가짐이지, 우리 나라가 경기 어렵지 않을 때 없었을 겁니다. 단지 좀 경제상황이 좋아서 여유는 잠깐 있을 수 있었으나 그건 단기간이었고, 그런 부분은 마음가짐이지, 어떻게 살아가느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전 IMF 같지가 않아요,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싼거부터 찾았는데, 이제는 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그 만큼 퀄리티가 좋아졌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얼마든지 투자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운영해 나간다면 충분히 영철버거도 잘 될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1분 동영상 - 영철버거 아저씨로 시작되는 '희망의 메시지'




CEO 인터뷰는 계속 될 것이다. 네번째 인터뷰는 크라제버거 민병식대표이다.


<CEO 열전>은 그속에서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꿈과 야망으로 똘똘 뭉쳐 어려운 경제 위기를 헤쳐가는 우리의 사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직원분들에게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사장님을 찾아보고자 한다.
분명 어려운 생활도 있을 것이고, 절망속에 빠져 힘들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런 인생역전 드라마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기획 의도는  '사장도 사람이다' , '성공에는 원칙이 있다', '성공하려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전달' 등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장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자 <CEO 열전> 을 진행하고자 한다.


 

CEO 열전> 세번째 인터뷰는 '영철버거'로 잘 알려진 이영철 대표(이하 이대표)를 만나고자 고대 안암동 본점으로 찾아갔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연락을 드렸을 때 어떤 인터뷰인지 보다는 저녁시간에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할 때 너무나 고마웠다. 인터뷰 요청도 힘들지만 바쁜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만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 늦은 저녁이라 편하게 인터뷰 할 수 있었고, 이대표가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곳(매장 한쪽 귀퉁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에서 영철버거와 이영철대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인터뷰 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망설임도 있었지만 내가 자세히 모르고 거절한다는 것은 뭔가 그래서 만나 뵙고 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성공한 사람, 더러는 돈 많이 번 사람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속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많은 꿈을 안고 가는거죠.
돈 많이 버니까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구나" 그런 마음을 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은 들지 않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씩 지금까지 총 1억200만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남 보기엔 번듯하게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16~17시간 동안 점포에서 일한다.
‘영원한 약속’이라고 광고했던 영철버거는 2008 2월1일 끝내 1500원으로 올렸다.

2005년엔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해냄출판사)'라는 에세이집 출간



- 영철버거의 영원한 약속이었던 1000원짜리 버거를 1500원으로 지난해 2월 올렸는데, 이후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1년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몇 년전 북세미나 인터뷰에서도 끝까지 간다고 했는데, 가격 올릴 때는 두 갈래 결정을 해야 될 사안이었어요. 하나는 정으로 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버렸고, 그때 당시만 해도 고대생 고객이 80% 만 되었다고 해도 끝까지 갔었을 텐데, 그 나마 전세까지 얻은 거 마저 팔 때까지 지켜볼려고 했었는데, 일반고객이 50% 정도였고 고대생 고객이 50% 였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을 했었어요. "가격을 올리면서 장사속에 사업가로 남기는 싫다, 그만하고 떠나야 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많은 졸업생들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내 나름대로는(2000년 부터 9년째 1000원짜리로 고수) 희생 많이 했고, 물질적(돈) 보다는 내 마음속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한테 배려하고 희생을 했는데,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사업을 접어야 할까? 아님 가격을 올려야 할까? 결국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결론이 내고, 가격을 올렸어요."
결국 손님은 많이 줄어서 1년 동안은 엄청난 적자를 봤구요,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원위치로 올라왔아요. 1000원짜리를 1500원 주고 먹으려면 상당히 고민하게 되거든요. 오는 분들이 너무 많이 올렸다고 하시는데, 이미 그 전에 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누적이 되었던 거구요, 가격을 올린 부분에 대해서 지금은 많이 잊혀진 듯 합니다. 그 외 또 다른 영철버거(메뉴 다양화)가 자리매김 한 것 같아요.


- 전국에 영철버거 가맹점이 몇 개나 되나요.
예전에는 40개 정도 되었는데, 많이 없어지고 지금은 10여개 남았어요. 왜냐면 영철버거 가맹점 했던 분들이 아주 서민적인 분들이 하나의 희망을 삼으려고 했는데, 그 만큼 없는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까, 고객에 대한 부분이나 이익에 대한 부분에서 빨리 따라주지 않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고객도 많이 않고, 수익도 따라주지 않아서)


- 영철버거 가맹점 비용은 받으셨는지.
처음에는 안받고 해주었어요. 자꾸 그러다 보니까 취지가 많이 틀어지더군요. 쉽게 이야기해서 금액을 안 받고 내다 보니까 쉽게 쉽게 생각하는 거고, 하다가 안되면 접지라는 그런 안이함을 가진거죠. 기뿐 마음으로 그분들이 열심히 살려고 할 때, 저도 어려운 적이 있었기에 사랑도 많이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 전달을 해야지 했는데, 그게 결국은 그분들을 망가뜨리지 않았나 생각을 가졌어요.
그분들이 기술을 배울 때 본점(고대안암동)에서 하게 되는데, 그건 또 하나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 되요. 왜냐면 이곳에는 끊임없이 고객이 오는데, 다른데(처음부터는) 아무래도 기다려야 하니까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 영철버거 가맹점이 늘기 보다는 줄어드는 이유는.
지난 해까지 종각에서 영철버거가 있었는데 잘 안되어서 철수했죠. 이런 실패를 하고 나서 나름대로 공부를 시도했죠. "영철버거가 한국의 토종버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건가, 정말 고대(본점)에만 하나의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건가" 그래서 종각에 내 봤는데 실패했죠. 종각에는 샐러리맨(회사원)이다 보니까 법인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 싼 걸 안 먹는 겁니다. 그 부분을 몰랐던 거구요, 경험으로 "이건 아니다, 내가 뭔가 실패 한거다, 영철버거 장점은 심플한 디자인에서 고객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컨셉으로 갔었는데, 본점은 콜라도 공짜인데 왜 여긴 돈을 받느냐" 이런 자꾸 문제점들이 부딪히더군요. 종각을 접고 다시 신설동에 하나를 냈어요.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고, 이곳은 인테리어도 아주 고급스럽게 하고, 테이블도 놓고, 커피도 판매하고, 셋트 메뉴도 다양하게 만들고, 음료도 별도 비용을 받는데 고객들이 본점(5분거리)하고 가장 가까운데 불구하고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아 이래 이렇게 영철버거가 발전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 가맹점을 늘리려면 늘리는데, 40여개 나가고 문제점을 파악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안내 준거죠. “이런 문제점을 찾기 전까지는 가맹점이 나가면 영철버거 이미지가 흐려지고, 내 자체적으로 투자를 해서 부족된 부분을 채어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신설동 매장을 했구요, 처음 6개월 동안 많은 적자를 봤는데 지금은 본궤도에 올랐어요.


- 처음 시작한 영철버거 노점상 위치는 어디인가요, 얼마 동안 했는지.
노점상을 한 곳은 지금의 영철버거 본점 건너편(맞은편) 골목입니다. 현재는 커피빈이 있고, GS25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점상은 2년정도 했구요, 이후에는 영철버거 매장(6평정도)을 3년째 하다가 커피빈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본점)의 자리에 오게 된 겁니다. (4년째 운영 중)


- 하루동안 판매되는 영철버거는.
하루 1500개 정도입니다. ‘영철 street 버거’는 1000개가 좀 안 나가고, 메뉴가 다양화 되니까 다른 것이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메뉴가 다양화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구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메뉴 다양화는 지난해 부터 활성화 됨)
메뉴 다양화를 통해 매출 증대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인건비 지출 문제, 다양한 식품재료가 들어가면서 순이익이 떨어지고요, 단일품목 판매 할 때에 비해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신 메뉴가 나오더라도 어렵다 보니까 가격대를 비싸게 못 맞춰요, 최대한 맥시멈 맞추어야 고객들이 찾게 되는 거고, ‘영철버거’라는 브랜드가 아직까지는 약하기 때문에 중가로 낮춰서 판매하다 보니까 수익부분이나 관리 부분이 많이 약하죠.


전에는 일반 포장마차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영철버거(햄버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당시 포장마차에서 햄버거를 판매는 생소한 것 아니었는지.
어려서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외식산업에 많이 있었구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인생공부가 된듯하고. 그런 재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가 없었을 거다. 서비스라는 것은 메뉴얼이 아니라 내 몸에 베어있었던 것 같다" 말하곤 하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건축일 했었는데, 사회 살아가면서 신용은 지켜야겠다 했죠. 근데 건축일 하다보니까 신용 없는데가 건축일이예요. 어려서부터 가끔 책을 봐도 유명한 분들은 다들 신용이라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는데, 제가 하는일은 신용을 지키려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구요. 이건 아닌 것 같다 생각했고, 그때 마침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움직일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점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고, 노점을 하기 위해서 리어카를 끌고 나왔을 때는 제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소하더군요. 노점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서로 안된 분들이 안아주고 보듬어 줄 줄 알았는데 더 내치는 거예요. 똑 같은 상황에서 더 내치더군요. "아~ 오죽하면 젊은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겠는가" 땡겨주고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밀어 내려고만 하니까, 가면 갈 수록 더 무섭더군요.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은 "인생을 헛 살았구나" 하는 겁니다. 왜 그분이 그럴 수 밖에 없었나 고민했던게, 오로지 절박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자기네가 다치니까, 밥 그릇을 뺏긴다고 이분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같으면 같이 몰려있으면 더 잘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분들은 너가 들어오면 내거 빼어 먹는다고 생각만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그런 부분들이 너무 싫더라구요. 그런걸 느꼈을 때 "세상 다시 살아야 하는구나" 많이 생각했고, 아픔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심하더군요.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럼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말고 색다른 것을 해보자, 그럼 나를 덜 밀어내는 거 아니냐, 자기네 분야가 틀리니까, 그렇게 해서 예전 레스토랑에서 했던 멕시칸버거(샐러드 넣고)를 만든 거죠. 당시 반응은 괜찮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이 부족했지만, 그리고 나서 그때 잘했던 것이 오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만든 것이 있는데 어떤지, 뭐가 부족한 것은 없는지, 그런 걸 자꾸 물어 봤던게, 오늘날의 나를 만든게 아닌가 생각해요.
학생들이 "여긴 소스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고기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자꾸 입맛에 맞추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입맛이 되었구요, 지금의 영철버거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전문가분들이 곁에 두고 새로운 메뉴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운영하면서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제 욕심부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너무너무 행복해요. 쉽게 이야기 하면, 많은 졸업생들이 저의 꾸지람과 저는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지식을 얻었고, 저의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서로간의 멘토가 되어 가지고, 그게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 보람을 느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지금 인터뷰(매장에서)하는 공간이 왜 만들어졌냐면 졸업하고 사회 나간 학생들이 찾아와요, 학교를 들르면 꼭 들렸다 가요. 그러면 예전하고 틀리잖아요. 그냥 빵만 먹으면서 얘기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기와서 커피한잔도 하면서 자기의 고민, 나의 고민, 서로 털어놓은 그런 쉼터가 된거죠. 그런 부분이 가장 보람되고, 그들로 하여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죠.
졸업생들에게 이런말을 해요 "사람들은 다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존경 받는 성공이 있고, 잠깐 그 사람 돈 많은 그런 성공이 있다"고,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에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런 내용들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환경이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 '영철버거'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어떻게 생겨 난 건가요.
시립대-외대에서 장사할 때, 동그란 햄버거(멕시칸 햄버거)를 팔았는데 어떤 여학생이 아이디어를 주었고, 아저씨 이름을 딴 '영철 street 버거'를 파는 것이 낫겠다 해서 시작했구요.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본점만 갖고 있구요, 그리고 상호 특허를 '영철버거' 로 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영철버거'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어느 누군가 한테 미안하다 마음을 같고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든지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좀 아닌데, 저는 가장 고마웠던게, 1000원짜리 버거를 먹으러 오묜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객을 숙이고 매장에 오니까, 내가 뭔가 열의를 쏟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황사가 오면 문을 내렸어요. "학생들한테 위생적인 만큼은 팔아서 안 된다 장사에 많은 이윤이 오더라도 손해를 봐야겠다" 라는 마음에 서로간의 마음의 사랑이 영철버거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모든 걸 여기다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열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영철버거를 지금도 자주 먹나요. 장사하는 동안 몇 개 정도나 먹었는지.
그럼요, 지금도 자주 먹죠. 요즈음 메뉴 개발 하면서 자주 먹게 되니까 빵이 좀 질려요. 그래도 먹어봐야만 잘못된 부분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계속 먹고 있죠. 식사대용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9년 넘게 해오고 있고 매일 한 개이상 먹다보니 4000~5000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원들도 끝나고 남은 것은 싸가요, 여기서 배운것은 모든게 한결 같아야지, “내 가족은 좋은 거 먹고, 파는 것을 다르게 해서는 안 된다. 내거랑 똑 같은 마음에서 똑같이 먹고 그래야만이 정말 멋진 인생을 사는거다. 그 만큼 내가 자신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둘째가 영철버거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 그만두고 영철버거를 물려받는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하하하)


- 초등학교 4학년 중퇴, 마음 한구석에 아픔은 있지 않나요.
큰 애 학원공부 하는데 태우러 갔는데 딸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갈게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아빠가 공부의 한이 되잖아요" "아빠 그런거 한 안돼, 왜 한이 안 돼냐면 아빠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이 안돼, 근데 네가 열심히 배워야 되는가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 조건이 되어야만 남한테 도와줄 수가 있다, 아빠는 너에게 그걸 원하는 거지, 많이 배워 편하게 세상 사는게 아니라, 네가 소리낼 수 있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만 되어주면 바란다. 아빠는 열등의식 없고, 앞으로 꿈이 있단다"
여기서 꿈은 50대면(지금은 42살) 공부하려고요. 지금 공부를 많이 하면 살이 많이쪄서 안되고요. 쉽게 이야기해서 저의 본질을 잃어버려요.

돈이 있으면 행복한 거라고 느끼는데, 이렇게 사는 것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분들이 별로 없는 거예요. 오로지 현실에만 자본에만 결과치를 놓고 보니까 안쓰럽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만이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철버거 오면 어떤 서비스를 준다" 라는 것이 있는지.
희망이죠. 돈보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그 과정을 겪어 왔잖아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 그런 현실을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근데 세상 바라보는 것은 자기 할 탓이다. 자기가 늘 남을 배려하고, 남을 사랑해야만 남도 자기를 사랑 할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서 나는 또 다른 빛을 볼 것이다. 요즈음 많은 젋은이 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좌절하고, 자살도 하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도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나왔지, 뭐가~ 너희들 보다 잘난게 있냐, 집안이 대단하냐, 그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희망이라는 끄나풀이 되고 싶고 현실에 그런 인물로 남고 싶습니다.
"내 목표는 성공은 돈이다" 아니라는 거죠. 나는 이렇게 어려운 과정에 천대받고, 폐인이 될 정도까지 갔었지만, 내가 그걸 바꿔어서 생각해 보니까 뭐든 세상 사람들이 내 편이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 딸아이도 아빠로 인해서 더 노력하더군요.

과거, 가맹점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은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으로서는 많이 아쉽죠.


- 어려운 경제 위기, 영철버거는 어떻게 이겨내실 건지.
▷  장사가 안 어려운 적이 없었던 것 같더군요. 3년전 인터뷰 할 때도 아나운서가 경기가 어렵다고 했거든요. 모든 것이 마음 가짐이지, 우리 나라가 경기 어렵지 않을 때 없었을 겁니다. 단지 좀 경제상황이 좋아서 여유는 잠깐 있을 수 있었으나 그건 단기간이었고, 그런 부분은 마음가짐이지, 어떻게 살아가느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전 IMF 같지가 않아요,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싼거부터 찾았는데, 이제는 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그 만큼 퀄리티가 좋아졌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얼마든지 투자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운영해 나간다면 충분히 영철버거도 잘 될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1분 동영상 - 영철버거 아저씨로 시작되는 '희망의 메시지'




CEO 인터뷰는 계속 될 것이다. 네번째 인터뷰는 크라제버거 민병식대표이다.
CEO 열전> 세번째 인터뷰는 '영철버거'로 잘 알려진 이영철 대표(이하 이대표)를 만나고자 고대 안암동 본점으로 찾아갔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연락을 드렸을 때 어떤 인터뷰인지 보다는 저녁시간에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할 때 너무나 고마웠다. 인터뷰 요청도 힘들지만 바쁜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만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 늦은 저녁이라 편하게 인터뷰 할 수 있었고, 이대표가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곳(매장 한쪽 귀퉁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에서 영철버거와 이영철대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인터뷰 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망설임도 있었지만 내가 자세히 모르고 거절한다는 것은 뭔가 그래서 만나 뵙고 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성공한 사람, 더러는 돈 많이 번 사람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속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많은 꿈을 안고 가는거죠.
돈 많이 버니까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구나" 그런 마음을 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은 들지 않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씩 지금까지 총 1억200만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남 보기엔 번듯하게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16~17시간 동안 점포에서 일한다.
‘영원한 약속’이라고 광고했던 영철버거는 2008 2월1일 끝내 1500원으로 올렸다.

2005년엔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해냄출판사)'라는 에세이집 출간



- 영철버거의 영원한 약속이었던 1000원짜리 버거를 1500원으로 지난해 2월 올렸는데, 이후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1년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몇 년전 북세미나 인터뷰에서도 끝까지 간다고 했는데, 가격 올릴 때는 두 갈래 결정을 해야 될 사안이었어요. 하나는 정으로 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버렸고, 그때 당시만 해도 고대생 고객이 80% 만 되었다고 해도 끝까지 갔었을 텐데, 그 나마 전세까지 얻은 거 마저 팔 때까지 지켜볼려고 했었는데, 일반고객이 50% 정도였고 고대생 고객이 50% 였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을 했었어요. "가격을 올리면서 장사속에 사업가로 남기는 싫다, 그만하고 떠나야 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많은 졸업생들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내 나름대로는(2000년 부터 9년째 1000원짜리로 고수) 희생 많이 했고, 물질적(돈) 보다는 내 마음속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한테 배려하고 희생을 했는데,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사업을 접어야 할까? 아님 가격을 올려야 할까? 결국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결론이 내고, 가격을 올렸어요."
결국 손님은 많이 줄어서 1년 동안은 엄청난 적자를 봤구요,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원위치로 올라왔아요. 1000원짜리를 1500원 주고 먹으려면 상당히 고민하게 되거든요. 오는 분들이 너무 많이 올렸다고 하시는데, 이미 그 전에 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에 누적이 되었던 거구요, 가격을 올린 부분에 대해서 지금은 많이 잊혀진 듯 합니다. 그 외 또 다른 영철버거(메뉴 다양화)가 자리매김 한 것 같아요.


- 전국에 영철버거 가맹점이 몇 개나 되나요.
예전에는 40개 정도 되었는데, 많이 없어지고 지금은 10여개 남았어요. 왜냐면 영철버거 가맹점 했던 분들이 아주 서민적인 분들이 하나의 희망을 삼으려고 했는데, 그 만큼 없는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까, 고객에 대한 부분이나 이익에 대한 부분에서 빨리 따라주지 않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고객도 많이 않고, 수익도 따라주지 않아서)


- 영철버거 가맹점 비용은 받으셨는지.
처음에는 안받고 해주었어요. 자꾸 그러다 보니까 취지가 많이 틀어지더군요. 쉽게 이야기해서 금액을 안 받고 내다 보니까 쉽게 쉽게 생각하는 거고, 하다가 안되면 접지라는 그런 안이함을 가진거죠. 기뿐 마음으로 그분들이 열심히 살려고 할 때, 저도 어려운 적이 있었기에 사랑도 많이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 전달을 해야지 했는데, 그게 결국은 그분들을 망가뜨리지 않았나 생각을 가졌어요.
그분들이 기술을 배울 때 본점(고대안암동)에서 하게 되는데, 그건 또 하나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 되요. 왜냐면 이곳에는 끊임없이 고객이 오는데, 다른데(처음부터는) 아무래도 기다려야 하니까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 영철버거 가맹점이 늘기 보다는 줄어드는 이유는.
지난 해까지 종각에서 영철버거가 있었는데 잘 안되어서 철수했죠. 이런 실패를 하고 나서 나름대로 공부를 시도했죠. "영철버거가 한국의 토종버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건가, 정말 고대(본점)에만 하나의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건가" 그래서 종각에 내 봤는데 실패했죠. 종각에는 샐러리맨(회사원)이다 보니까 법인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 싼 걸 안 먹는 겁니다. 그 부분을 몰랐던 거구요, 경험으로 "이건 아니다, 내가 뭔가 실패 한거다, 영철버거 장점은 심플한 디자인에서 고객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컨셉으로 갔었는데, 본점은 콜라도 공짜인데 왜 여긴 돈을 받느냐" 이런 자꾸 문제점들이 부딪히더군요. 종각을 접고 다시 신설동에 하나를 냈어요.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고, 이곳은 인테리어도 아주 고급스럽게 하고, 테이블도 놓고, 커피도 판매하고, 셋트 메뉴도 다양하게 만들고, 음료도 별도 비용을 받는데 고객들이 본점(5분거리)하고 가장 가까운데 불구하고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아 이래 이렇게 영철버거가 발전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 가맹점을 늘리려면 늘리는데, 40여개 나가고 문제점을 파악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안내 준거죠. “이런 문제점을 찾기 전까지는 가맹점이 나가면 영철버거 이미지가 흐려지고, 내 자체적으로 투자를 해서 부족된 부분을 채어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신설동 매장을 했구요, 처음 6개월 동안 많은 적자를 봤는데 지금은 본궤도에 올랐어요.


- 처음 시작한 영철버거 노점상 위치는 어디인가요, 얼마 동안 했는지.
노점상을 한 곳은 지금의 영철버거 본점 건너편(맞은편) 골목입니다. 현재는 커피빈이 있고, GS25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점상은 2년정도 했구요, 이후에는 영철버거 매장(6평정도)을 3년째 하다가 커피빈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본점)의 자리에 오게 된 겁니다. (4년째 운영 중)


- 하루동안 판매되는 영철버거는.
하루 1500개 정도입니다. ‘영철 street 버거’는 1000개가 좀 안 나가고, 메뉴가 다양화 되니까 다른 것이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메뉴가 다양화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구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메뉴 다양화는 지난해 부터 활성화 됨)
메뉴 다양화를 통해 매출 증대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인건비 지출 문제, 다양한 식품재료가 들어가면서 순이익이 떨어지고요, 단일품목 판매 할 때에 비해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신 메뉴가 나오더라도 어렵다 보니까 가격대를 비싸게 못 맞춰요, 최대한 맥시멈 맞추어야 고객들이 찾게 되는 거고, ‘영철버거’라는 브랜드가 아직까지는 약하기 때문에 중가로 낮춰서 판매하다 보니까 수익부분이나 관리 부분이 많이 약하죠.


전에는 일반 포장마차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영철버거(햄버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당시 포장마차에서 햄버거를 판매는 생소한 것 아니었는지.
어려서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외식산업에 많이 있었구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인생공부가 된듯하고. 그런 재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가 없었을 거다. 서비스라는 것은 메뉴얼이 아니라 내 몸에 베어있었던 것 같다" 말하곤 하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건축일 했었는데, 사회 살아가면서 신용은 지켜야겠다 했죠. 근데 건축일 하다보니까 신용 없는데가 건축일이예요. 어려서부터 가끔 책을 봐도 유명한 분들은 다들 신용이라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는데, 제가 하는일은 신용을 지키려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구요. 이건 아닌 것 같다 생각했고, 그때 마침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움직일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점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고, 노점을 하기 위해서 리어카를 끌고 나왔을 때는 제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소하더군요. 노점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서로 안된 분들이 안아주고 보듬어 줄 줄 알았는데 더 내치는 거예요. 똑 같은 상황에서 더 내치더군요. "아~ 오죽하면 젊은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겠는가" 땡겨주고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밀어 내려고만 하니까, 가면 갈 수록 더 무섭더군요.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은 "인생을 헛 살았구나" 하는 겁니다. 왜 그분이 그럴 수 밖에 없었나 고민했던게, 오로지 절박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자기네가 다치니까, 밥 그릇을 뺏긴다고 이분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같으면 같이 몰려있으면 더 잘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분들은 너가 들어오면 내거 빼어 먹는다고 생각만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그런 부분들이 너무 싫더라구요. 그런걸 느꼈을 때 "세상 다시 살아야 하는구나" 많이 생각했고, 아픔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심하더군요.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럼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말고 색다른 것을 해보자, 그럼 나를 덜 밀어내는 거 아니냐, 자기네 분야가 틀리니까, 그렇게 해서 예전 레스토랑에서 했던 멕시칸버거(샐러드 넣고)를 만든 거죠. 당시 반응은 괜찮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이 부족했지만, 그리고 나서 그때 잘했던 것이 오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만든 것이 있는데 어떤지, 뭐가 부족한 것은 없는지, 그런 걸 자꾸 물어 봤던게, 오늘날의 나를 만든게 아닌가 생각해요.
학생들이 "여긴 소스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고기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자꾸 입맛에 맞추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입맛이 되었구요, 지금의 영철버거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전문가분들이 곁에 두고 새로운 메뉴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운영하면서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제 욕심부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너무너무 행복해요. 쉽게 이야기 하면, 많은 졸업생들이 저의 꾸지람과 저는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지식을 얻었고, 저의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서로간의 멘토가 되어 가지고, 그게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 보람을 느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지금 인터뷰(매장에서)하는 공간이 왜 만들어졌냐면 졸업하고 사회 나간 학생들이 찾아와요, 학교를 들르면 꼭 들렸다 가요. 그러면 예전하고 틀리잖아요. 그냥 빵만 먹으면서 얘기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기와서 커피한잔도 하면서 자기의 고민, 나의 고민, 서로 털어놓은 그런 쉼터가 된거죠. 그런 부분이 가장 보람되고, 그들로 하여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죠.
졸업생들에게 이런말을 해요 "사람들은 다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존경 받는 성공이 있고, 잠깐 그 사람 돈 많은 그런 성공이 있다"고,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에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런 내용들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환경이 영철버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 '영철버거'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어떻게 생겨 난 건가요.
시립대-외대에서 장사할 때, 동그란 햄버거(멕시칸 햄버거)를 팔았는데 어떤 여학생이 아이디어를 주었고, 아저씨 이름을 딴 '영철 street 버거'를 파는 것이 낫겠다 해서 시작했구요.
'영철 street 버거' 이름은 본점만 갖고 있구요, 그리고 상호 특허를 '영철버거' 로 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영철버거'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 '영철버거'를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어느 누군가 한테 미안하다 마음을 같고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든지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좀 아닌데, 저는 가장 고마웠던게, 1000원짜리 버거를 먹으러 오묜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객을 숙이고 매장에 오니까, 내가 뭔가 열의를 쏟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황사가 오면 문을 내렸어요. "학생들한테 위생적인 만큼은 팔아서 안 된다 장사에 많은 이윤이 오더라도 손해를 봐야겠다" 라는 마음에 서로간의 마음의 사랑이 영철버거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모든 걸 여기다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열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영철버거를 지금도 자주 먹나요. 장사하는 동안 몇 개 정도나 먹었는지.
그럼요, 지금도 자주 먹죠. 요즈음 메뉴 개발 하면서 자주 먹게 되니까 빵이 좀 질려요. 그래도 먹어봐야만 잘못된 부분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계속 먹고 있죠. 식사대용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9년 넘게 해오고 있고 매일 한 개이상 먹다보니 4000~5000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원들도 끝나고 남은 것은 싸가요, 여기서 배운것은 모든게 한결 같아야지, “내 가족은 좋은 거 먹고, 파는 것을 다르게 해서는 안 된다. 내거랑 똑 같은 마음에서 똑같이 먹고 그래야만이 정말 멋진 인생을 사는거다. 그 만큼 내가 자신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둘째가 영철버거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 그만두고 영철버거를 물려받는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하하하)


- 초등학교 4학년 중퇴, 마음 한구석에 아픔은 있지 않나요.
큰 애 학원공부 하는데 태우러 갔는데 딸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갈게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아빠가 공부의 한이 되잖아요" "아빠 그런거 한 안돼, 왜 한이 안 돼냐면 아빠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이 안돼, 근데 네가 열심히 배워야 되는가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 조건이 되어야만 남한테 도와줄 수가 있다, 아빠는 너에게 그걸 원하는 거지, 많이 배워 편하게 세상 사는게 아니라, 네가 소리낼 수 있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만 되어주면 바란다. 아빠는 열등의식 없고, 앞으로 꿈이 있단다"
여기서 꿈은 50대면(지금은 42살) 공부하려고요. 지금 공부를 많이 하면 살이 많이쪄서 안되고요. 쉽게 이야기해서 저의 본질을 잃어버려요.

돈이 있으면 행복한 거라고 느끼는데, 이렇게 사는 것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분들이 별로 없는 거예요. 오로지 현실에만 자본에만 결과치를 놓고 보니까 안쓰럽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만이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철버거 오면 어떤 서비스를 준다" 라는 것이 있는지.
희망이죠. 돈보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그 과정을 겪어 왔잖아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 그런 현실을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근데 세상 바라보는 것은 자기 할 탓이다. 자기가 늘 남을 배려하고, 남을 사랑해야만 남도 자기를 사랑 할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서 나는 또 다른 빛을 볼 것이다. 요즈음 많은 젋은이 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좌절하고, 자살도 하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도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나왔지, 뭐가~ 너희들 보다 잘난게 있냐, 집안이 대단하냐, 그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희망이라는 끄나풀이 되고 싶고 현실에 그런 인물로 남고 싶습니다.
"내 목표는 성공은 돈이다" 아니라는 거죠. 나는 이렇게 어려운 과정에 천대받고, 폐인이 될 정도까지 갔었지만, 내가 그걸 바꿔어서 생각해 보니까 뭐든 세상 사람들이 내 편이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 딸아이도 아빠로 인해서 더 노력하더군요.

과거, 가맹점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은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으로서는 많이 아쉽죠.


- 어려운 경제 위기, 영철버거는 어떻게 이겨내실 건지.
▷  장사가 안 어려운 적이 없었던 것 같더군요. 3년전 인터뷰 할 때도 아나운서가 경기가 어렵다고 했거든요. 모든 것이 마음 가짐이지, 우리 나라가 경기 어렵지 않을 때 없었을 겁니다. 단지 좀 경제상황이 좋아서 여유는 잠깐 있을 수 있었으나 그건 단기간이었고, 그런 부분은 마음가짐이지, 어떻게 살아가느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전 IMF 같지가 않아요,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싼거부터 찾았는데, 이제는 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그 만큼 퀄리티가 좋아졌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얼마든지 투자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운영해 나간다면 충분히 영철버거도 잘 될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1분 동영상 - 영철버거 아저씨로 시작되는 '희망의 메시지'




CEO 인터뷰는 계속 될 것이다. 네번째 인터뷰는 크라제버거 민병식대표이다.


<CEO 열전>은 그속에서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꿈과 야망으로 똘똘 뭉쳐 어려운 경제 위기를 헤쳐가는 우리의 사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직원분들에게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사장님을 찾아보고자 한다.
분명 어려운 생활도 있을 것이고, 절망속에 빠져 힘들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런 인생역전 드라마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기획 의도는  '사장도 사람이다' , '성공에는 원칙이 있다', '성공하려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전달' 등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장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자 <CEO 열전> 을 진행하고자 한다.




<CEO 열전>은 그속에서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꿈과 야망으로 똘똘 뭉쳐 어려운 경제 위기를 헤쳐가는 우리의 사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직원분들에게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사장님을 찾아보고자 한다.
분명 어려운 생활도 있을 것이고, 절망속에 빠져 힘들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런 인생역전 드라마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기획 의도는  '사장도 사람이다' , '성공에는 원칙이 있다', '성공하려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전달' 등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장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자 <CEO 열전> 을 진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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